[curation]미팅 가는 길, 직원에게 무슨 향수 쓰냐고 물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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벌써 작년 여름의 일입니다.
nown unown 북촌 쇼룸 미팅을 위해 연희동의 한 디자인 스튜디오로 가던 길이었어요. 평소 혜화 사무실에만 있던 직원들에게는 그 길 자체가 꽤 즐거웠던 모양입니다.
다들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, 따뜻한 햇살 아래 카페와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며 함께 걸었습니다.
그때 제 앞에 가던 직원에게서, 제 옆에 있던 직원에게서, 함께 걷던 누군가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어요.
뜨거운 햇살을 가르고 전달되어 오는 기분 좋은 산뜻함.
그런데 무슨 향인지 바로 모르겠는 겁니다.
바로 물어봤죠.
“좋은 냄새 나는데, 오늘 뭐 뿌렸어요?”
그런데 쉽게 알려주지 않더라고요.
“맞혀보세요!”

향수는 손목 가까이에서 맡을 때와, 누군가가 움직일 때 공기 중에서 맡을 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.
상세페이지에서는 사색적으로 풀었던 향이
길 위에서는 훨씬 깨끗하고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,
익숙한 비누 향이 처음 맡는 향처럼 다가오기도 하지요.
그 여름, 직원들에게서 실제로 좋았던 세 가지 향수.
 가감 없이 풀어보겠습니다.



엘라 케이K

포엠 드 사가노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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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 알아본 향수는
 엘라 케이의 포엠 드 사가노였습니다.
바람을 타고 건너온 유자는 레몬처럼 산뜻하면서도, 잘 익은 만다린처럼 둥글고 경쾌하게 달콤했어요. 그 위로 대나무의 푸른 결이 겹치며 투명하고 청량한 향기를 만듭니다.
교토의 조용한 정원에 있는 작은 호수. 그 근처의 대나무 향이 밴 샴푸를 사용한 사람이 천천히 지나가는 느낌이랄까요.
상세페이지에서는 고요하고 사색적인 향수로 풀었지만,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서 맡은 향은 훨씬 깨끗하고 즐겁고 경쾌했습니다.
피부 가까이에서 맡을 때보다 사람이 움직이고 바람이 불 때, 유자와 대나무의 산뜻함이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향수예요.



엘라 케이K

플루이 쑤 하 롱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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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번째로 좋은 향기를 남긴 건
엘라 케이의 플루이 쑤 하 롱이었습니다.
처음에는 구딸이나 조 말론의 투명한 플로럴 향수 몇 가지를 레이어링한 줄 알았어요.
아삭한 배의 과즙으로 목련과 은방울꽃을 키워낸 듯한 향기였습니다. 하늘거리는 흰 꽃향이 햇살에 비칠 때마다, 공기 중에서 잘게 부서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.
청순하다고 해야 할까요. 깨끗한 비누 향이라고 해야 할까요. 씻고, 샴푸하고, 깨끗한 옷을 입고 막 집을 나선 사람에게 햇살이 부딪칠 때 나는 향과 가장 비슷합니다.
분명 신경 써서 준비한 옷차림인데 애써 꾸민 흔적은 보이지 않고, 그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맑고 좋은 향기만 가볍게 따라오는 향수였어요.



룸 1015

러브 오 매틱

26c2ff6b498b9.png마지막 향수는
룸 1015의 러브 오 매틱이었습니다.
처음 맡아보는 종류의 비누 향 같았어요.
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프리지아도,
바이레도의 블랑쉬도 아니었습니다.
기분 좋은 딸기 과즙이 아주 낮게 속삭이고,
버블껌을 씹던 사람이 근처에 있을 때 날 법한
오묘한 달콤함이 비누 향 사이에 숨어 있었어요.
그 향이 당시의 깨끗한 공기에 부딪치며
이리저리 가볍게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.
투명하면서도 포근하고,
달콤하지만 끈적하지 않았어요.
세탁을 막 끝낸 흰 린넨 셔츠에
여름바람이 들어와 끝자락이 흔들리는 듯한 향수였습니다.



마주한 모든 풍경이 사랑스러운 계절,
오감을 만족시킬 다채로운 복숭아 향기와 함께
맑고 싱그러운 여름을 맞이해 보세요.


Editor. Sonior